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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을 자주 한다. 다양한 기법으로 이미지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으며 과거를 자주 떠올린다.
Instagram@teaofwater
E-mailanfdmlck@gmail.com

Interview

  • Q.

    일기에 작업 얘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최근에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 A.

    일기 쓰는 기간에는 세 개의 포스터를 만들던 중이었어요. 처음으로 세 개의 포스터를 한꺼번에 작업하면서 제 디자인 실력에 한계를 느꼈어요. 파티에서 배운 걸 기억나는 대로 모두 써먹으면서 작업했는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아, 그리고 제가 지금 서울메이드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일기 쓰는 동안 워크숍 영상 촬영 보조를 했어요. 최근에는 전시 ‹Play Plastic Project› 준비도 하고 있어요. 저는 원래 사진 담당이었는데, 전시 기획팀 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에 덥석 하겠다고 했다가 지금 이것저것 다 맡아서 하고 있어요.

  • Q.

    사진과 그림, 디자인까지 각각의 작업에서 어떤 흥미를 느끼고 있나요?

  • A.

    일단 그림은 백 퍼센트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그냥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딱히 어떤 목적을 두고 그림을 그렸던 적은 없어요. 그러다보니 의뢰받아서 그림을 그리는 건 많이 부담스럽고 흥미도 떨어지더라고요. 저는 머릿속으로 생각한 이미지를 그리는 것보다 그리다보니까 무언가가 되는 게 좋아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게 재밌는 거고요.
    그리고 제가 일기를 쓰면서 생각해봤는데, 전 디자인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즐기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일단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정말 멋있어 보이고 디자인 자체가 매력적인 작업이라서 잘하고 싶어요. 근데… 즐기지는 못해요(웃음). 사실 남의 작업을 보는 게 더 좋아요. 저는 작업할 때 발전 과정을 잘 안 거치는 편이거든요. 한 번 만족하면 작업을 끝내요. 그래서 디자인할 때 너무 어렵더라고요. 디자인은 계속 수정 사항이 있고, 디벨롭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저는 1차로 완성한 것에서 뭘 수정해야 더 나아 보이는지 잘 모르겠는데, 클라이언트는 계속 완성도를 높여달라고 하더라고요. 전 완성된 것 같은데(웃음). 그래도 의뢰받아서 그림 그리는 것보다는 덜 부담스럽기는 해요. 제가 배운 기술을 조금만 써먹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무언가가 만들어지긴 하니까요.
    사진 작업은 부담이 거의 없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막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진 작업 할 때는 제가 좀 더 주체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가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해도 구도나 색감 면에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작업에 비해 조금 더 즐기면서 할 수도 있고요. 저는 사진 일을 많이 받아서 하고 싶어요.

  • Q.

    인스타그램에 사진 작업이 많이 올라오던데, 외주를 위한 것인가요?

  • A.

    원래는 제 작업을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작업을 딱히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없으니까요. 근데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일이 들어오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는 포트폴리오처럼 관리하게 되었어요. 그게 좀 아쉽긴 해요.
    제가 예전에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그만 둔 적이 있었는데, 좋아요랑 팔로워에 자꾸 얽매이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잖아요.

  • Q.

    지금도 얽매이고 계신가요?

  • A.

    네. 인스타그램 그만두고 싶어요(웃음). 좋아요가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좋아요 누르는 것도 다 친구들이고요. 제가 친구들한테 왜 제 모든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냐고 물어봤는데 ‘너의 작업을 응원하기 위해서 누른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작업이 좋을 때만, 객관적으로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객관적인 평가는 남들이 해주니까 자기들은 응원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 Q.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작업물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 A.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봐도 부끄럽지 않은 작업물을 업로드해요. 저는 작업이 끝나면 바로 공개하지 않고 묵혀둬요. 최소 한두 달 정도를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봐도 괜찮은 것 같으면 올려요. 나중에 후회하고 지우기가 싫어서요. 작업을 완성한 직후에는 빨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들떠있긴 한데, 그런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해요. 제가 올린 작업 중에는 4년 전에 했던 것도 있어요.

  • Q.

    대부분 사진 베이스의 작업을 하시던데, 그 중에서도 보정이나 합성 등의 후작업이 돋보이는 것들도 있더라고요.

  • A.

    네. 예전부터 연출되거나 과장된 사진이 좋았어요. 아빠가 취미로 사진을 찍으시는데 풍경 사진보다 인물 사진이 더 좋다고, 인물 사진은 자기만 찍을 수 있는 특색이 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까 저도 구글에 검색해서 나올 법한 사진보다는 작가의 특색이 묻어나는 사진이나 이미지가 좋다고 여기게 됐어요.
    전 똑같이 사진을 베이스로 하더라도 ‘사진’과 ‘이미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좀 더 사실적이고, 현장에서 컨트롤 할 수 있는 요소가 많고요. 이미지는 후반 작업에서 매력이 돋보이는 것 같아요. 보정이나 합성 같은 작업은 시간 될 때 조금씩 해요. 어떤 걸 의도해서 작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요. 외장하드 꽂고 폴더 뒤져보다가 이 사진이랑 이 사진 섞으면 재밌겠다 싶은 것들을 만져보는 거죠. 요즘엔 현장에서 연출하는 촬영도 해보고 싶어요.

  • Q.

    제가 해민님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인상깊게 봤던 작업 중에 하나는 이 작업(↑)이었는데요. 작업의 배경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

  • A.

    이 작업은 제가 작년에 프랑스로 교환학생 갔을 때 촬영한 사진이에요. 고흐가 살았던 곳으로 유명한 마을에 혼자 놀러 갔다가 이분, Marie Caffaro라는 화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고흐가 살던 집 뒤편에 있던 공터를 걷고 있는데 이분이 멀리서 차를 끌고 오셨어요. 차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꺼내서 펼쳐놓고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팔았어요. 근데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으니까 자리를 펴고 그림을 그리시더라고요. 저는 허락을 맡고 그림 그리시는 모습을 찍었어요. 나중에 메일도 주고받았어요.

  • Q.

    주변에 작업하는 친구들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 A.

    사실 ‘작업하는’ 친구들이 아니라 그냥 ‘친구들’이 주변에 계속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제가 감정 기복이 좀 심해요. 보통인 상태가 없고, 기분이 좋거나 혹은 좋지 않은 상태를 왔다 갔다 하는데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때는 대부분 기분이 좋은 상태예요. 그래서 계속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작업이 같이 있을 구실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 모이면 시너지가 더 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친구들도 저도 계속 작업을 하면 좋겠어요. 주변에 자랑스러운 친구들, 괴물 신인(@gghii__, @jueunhyeong, @soyounqp)이 많아요.

  • Q.

    일기를 읽으면서 해민님에게는 ‘하고 싶은 작업’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결국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 A.

    요즘엔 개인 작업을 많이 안 했는데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으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표현할 게 없어도 주변에 재미있는 게 많아서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친구들이랑 어딜 놀러 가거나 하면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게 되니까 그걸 바탕으로 그림도 그리고 이미지도 만들 수 있었거든요. 그 땐 영감을 받는 순간과 제작 과정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어요. 그런데 졸업하고 나서 그런 시간이 사라지니까 작업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글로 쓰는 게 가장 명확하다는 생각을 한 뒤로부터는 그걸 이미지로 풀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저는 저의 무의식, 아직 제가 발견하지 못했거나 필터링 되지 않은 생각을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무의식도 궁금하고요. 그게 정확히 어떤 작업일지는 저도 모르지만요. 무의미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작업이 반드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예전엔 메시지가 없는 작업은 무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에요.
    졸업작업(↑)을 할 때는 계속 작업에 대해 고민 하다 보니까 앞으로 뭘 하고 살지, 제가 뭘 좋아하는지 어렴풋이라도 알 것 같았거든요. 졸업작업도 그런 방향으로 했고요. 그런데 막상 졸업하고 나니까 긴장도 풀리고 머리도 굳은 것 같아요.

  • Q.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 보였어요. 타인의 삶을 자주 상상해보나요?

  • A.

    저는 상상을 많이, 아주 디테일하게 해요. 그런데 현실은 언제나 상상과는 다르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걸 느끼면서 제 자신을 편협하다고 생각하게 돼요. 아무튼 그런 제 성향 때문에 책이나 영화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진실게임도 좋아해요. 진실이 좋아요. 알고 싶어요.
    제가 기숙학교를 나왔는데요. 그때 다른 사람들과 아주 밀접하게 지내면서 사람들이 저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왜 그런지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왜 저랑 다른지요. 그래서 저는 연예인들 인터뷰도 많이 읽어요(웃음).

  • Q.

    아, 그럼 그런 궁금증이 주변 사람들에 한정된 게 아니네요?

  • A.

    네. 제가 아는 사람이면 다 궁금해요. 연예인도 아는 사람이긴 하니까요.

  • Q.

    영화나 책 중에서도 인물 중심의 이야기를 좋아하실 것 같아요.

  • A.

    네. 소설을 좋아해요. 부모님이 책을 많이 읽으셔서 부모님께 추천받은 책을 많이 읽고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을 모두 읽어보는 걸 좋아해요. 좋아하는 감독이 만든 영화를 다 보기도 하고요.
    선호하는 장르는 딱히 없는데 보지 않는 건 있어요. 액션이랑 판타지 장르요. 해리포터도 안 봤고, 마블 시리즈도 안 봤어요. 아, 그리고 영화든 책이든 봤던 거 또 보는 거 좋아해요.
    공지영 작가의 옛날 책들이랑 김애란 작가 책을 여러 번 읽었어요. 아, 최근에는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재밌게 봤어요. 인물이 많이 등장해서 중간중간 쉬면서 읽긴 했는데, 다 보고 나니까 ‘이 책 되게 편한 책이다’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Q.

    ‘잘 모르겠는’ 것들이 많아졌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최근에 ‘잘 모르겠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 A.

    대부분의 것들을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단순했어요. 사람들의 질문에 A 아니면 B라고 답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그 경계가 좀 흐릿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명쾌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마음속에 안개가 낀 기분이에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항상 마음속에 불안함이 잠재되어 있어요. 그 불안함이 어떤 것을 판단할 때도 영향을 미치고요. 제가 명확해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또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잘 모르겠는’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저 자신을 꼼꼼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저보다 더 꼼꼼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내가 꼼꼼한 편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 Q.

    명쾌해지고 싶은가요?

  • A.

    음….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지면 또 재미없을 것 같네요. 그랬던 적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요.

  • Q.

    본인에게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나요?

  • A.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기쁨이 유지되는 상태’에요. 감정 기복이 심한 만큼 한 감정이 유지되는 기간이 되게 짧거든요. 기뻐도 잠깐 기쁘고, 슬퍼도 잠깐 슬퍼요. 이렇게 수시로 기분이 바뀌다 보니까 좋은 기분이 하루 정도만 유지되어도 행복하다고 느껴요.

  • Q.

    최근에 기쁨이 오래 유지되었던 적이 있었나요?

  • A.

    올해 4월에 친구들이랑 강릉 여행을 갔을 때요. 저녁에 파도가 치는 바다를 보고 나서 그 다음 날까지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그때 행복하다고 느꼈고요. 전에 교환학생 가 있을 때 독일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친구랑 같이 친구가 아는 분 집에서 자게 되었어요. 그 집이 언덕 위에 있었거든요. 버스 종점에서 내린 후에 그 집을 찾아서 언덕을 내려갔어요. 마을이 참 고요하더라고요. 안정감, 평온함이 느껴졌어요. 걸으면서 그날 하루를 되돌아보는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근 몇 년 중에 그 두 가지 일이 기억에 남네요.

  • Q.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일기에 옮기는 데 어떤 기준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얘기도 있었나요?

  • A.

    네. 일기 쓰는 기간 동안 부모님과 싸운 적도 있고, 생리혈이 새서 침대 시트를 손빨래한 적도 있어요. 부끄러워서 안 썼다기보단 ‘굳이’라는 생각에 안 썼어요. 부모님이랑 싸웠을 당시에는 이 일은 일기에 담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어딘가에 기록되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누가 일기를 본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저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나는 오늘 지각을 했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저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것처럼 쓰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죠.
    특히 그 지각했던 일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어요. 네 개의 약속에 모두 늦은 일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하필 일기 쓰는 날에 지각을 하냐…’ 이런 생각을 했죠. ‘사람들이 이걸 읽고 나한테 실망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도 하고요(웃음). 아무도 기대 안 할텐데 저 혼자서(웃음).

  • Q.

    평소에도 일기를 쓰나요? 일주일 동안 일기를 쓴 소감을 말해주세요.

  • A.

    역시 일기 쓰는 건 참 좋더라고요.
    일기는 쓰고 싶은 날에 메모장에 써요. 큰일이 일어났는데 그 일을 아예 기록하지 않을 때도 있고, 지나고 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별거 아닌 일을 적을 때도 있어요. ‘내가 이런 것까지 썼다고?’ 할 정도로 부끄러운 얘기도 있고요. 분명히 썼을 것 같은 일만 쏙 빼놓고 쓴 일기도 있더라고요.

  • Q.

    썼던 일기를 다시 찾아보나요?

  • A.

    가끔 생각이 나면요. 예전에는 사건은 안 쓰고 당시에 제 감정이 어땠는지만 썼거든요. 근데 요즘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먼저 써요. 미래의 저를 위해서요.
    아, 마지막으로 더 많은 사람이 ‹ticcle›에 참여하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의 일기가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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