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리는 2017년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SUPERSALADSTUFF를 운영하며 주로 전시회, 브랜드, 책, 음악 관련 디자인을 한다. 어떤 것이 규정되는 기준, 경계를 들여다보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주기적으로 동명의 출판사에서 기획 인쇄물을 발행한다. 2021년에는 캡션이 이미지를 대신하는 책 『temporarily removed(일시적으로 제거된)』와 하이퍼텍스트에 관해 이야기하는 분절된 책 『Selected Papers(선택된 논문들, 종이들, 문서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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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쓰셨던 일기에 사소한 것들로부터 불안감을 느낀다는 문장이 있었는데요. 평소 걱정이 많으신가요? 최근엔 어떤 걱정을 하고 계신가요?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 답변을 드리기 전에 먼저 한 가지 말씀드리려고 해요. 저는 우울한 면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우울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시기적으로 조금 힘들 때 ‹ticcle›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래서 누군가 제 일기를 읽고 ‘이 사람 왜 이렇게 우울하지?’라고 느낄까 봐 엄청 걱정되더라고요. 이것도 걱정이네요? 생각해보니까(웃음). 아무튼,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솔직하게 일기를 썼어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사소한 걱정부터 시작해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걱정도 하는데요. ‘언제부터 현역 디자이너로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고요. ‘미래에 내가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도 있어요. ‘디자이너는 박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민이고요.
또 ‘내가 대중이 원하는 것과는 너무 다른 길로 가고 있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요. 개인 작업을 할 때는 특정 타깃을 소구하겠다는 목표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데, 일할 때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가끔 힘든 상황이 생겨요. ‘대중들은 이 디자인을 이해 못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요. 그럴 때면 어디까지 대중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저도 대중 중의 한 명인 거잖아요. 또 사람마다 아이덴티티나 개성, 취향이 꽤 다른데 그런 차이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냥 제 디자인이 싫다는 걸 대중을 빌려와서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대중을 타깃으로 할 때 제 디자인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웃음).
이 모든 건 디자이너로서 하는 걱정이고요. 그 외에는 온갖 사소한 지점에서 하여간 걱정이 많아요. 주변 친구들이 제발 걱정 좀 그만하라고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되네요.
일기에서 언급한 것 외에 걱정을 잠재우기 위해 하는 노력이 있나요?
일기에 쓴 것처럼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지 말자’ 같이 스스로 되뇌는 말을 많이 해요. 그게 가장 효과적이고요. 아니면 그냥 걸어요. 걷는 거 좋아해요. 생각이 너무 많을 때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버스 타고 아무 데나 내려서 걸어요.
걱정이나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세요?
네, 그렇죠. 예전에 병원에서 공식 검사를 받았는데, 저보고 ‘도박에 빠지지 않은 게 너무 다행이다’라는 거예요(웃음).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감각이 훨씬 예민하데요. 새로운 자극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거죠.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요.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도박 얘기는 뭐냐면, 제가 온갖 것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좇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거기에 딱 들어맞는 게 도박이잖아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저에게 잘 맞는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디자이너는 새로운 것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니까요. 디자이너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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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음반사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퇴사하신 건가요?
네. 올해 1월에 퇴사했는데, 그전에도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어요. 제가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는 게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인데요. 특히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불합리한 행동을 할 때, 그 대상이 꼭 제가 아니더라도 너무 힘들어요. 그런 곳에서 도망가듯이 이직을 한 경우도 있었고요. 그렇게 회사를 옮겨 다니느라 한곳에 오래 있었던 적이 없어요. 그런데 직전 회사에서는 좀 오래 일했어요. 2년 반 정도요. 회사 사람들이 다 좋았어요. 저랑 잘 맞고요. 회사가 저를 감독하듯이 지켜보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제가 뭘 얼마큼 했는지 시시각각 체크하지도 않았어요. 저를 믿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은 직원이 많아져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자유롭고, 저를 존중해주는 회사 분위기가 좋았고요. 거기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죠. 지금도 친하게 지내요. 이번에 대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회사 생활이랑 병행이 어려울 것 같아서 퇴사하게 되었어요.
일기에 ‘작업실도 동료도 없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럼 집에서 일하고 계신 건가요?
네. 저는 지금 제 방에서 일해요. 프린터기랑 컴퓨터가 한 대 있어요. 거의 책으로 차 있고요. 책이 너무 많아서 침대도 없앴어요. 방이 진짜 좁거든요.
예전에는 작업실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작업실 꾸미고, 친구들도 초대하는 그런…. 근데 돈이 없었죠. 작업실이 있으면 일을 하든 안 하든 계속 돈이 나가잖아요. 그런 점이 불안해서 작업실을 얻지 않았고, 그 후에는 계속 회사에 다녔으니까 딱히 필요 없었어요. 근데 이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까 인터뷰 같은 일들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꼭 인터뷰하는 쪽에서 작업실을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요(웃음). 당연히 작업실이 있으리라 상정하고 ‘작업실로 방문해도 될까요?’, ‘작업실에서 촬영해도 될까요?’ 이렇게 물어봐요. 작업실이 있는지부터 확인하지 않아요. 클라이언트분들도 저를 배려하셔서 ‘제가 해리 님 작업실로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요.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 그때마다 ‘저는 작업실이 없고, 제 방에 컴퓨터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기가 민망하더라고요(웃음).
왜 작업실이 있다고 여기시는지 생각해보면 제가 전에 ‹GRAPHIC› 매거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작업실이나 작업하는 환경을 찍어서 보내야 했거든요. 그래서 집에 놀러 온 사진작가 친구에게 제 방을 작업실처럼 찍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찍은 사진을 보고 다들 작업실이 있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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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일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작업에 대해 논의할 사람이 없을 때 어렵다고 느껴요. 작업이 잘 안 풀리거나 저 혼자 뭔가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 동료가 옆에 있으면 캐주얼하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런 피드백이 시시각각 이뤄지고요. 그런데 전 동료가 없으니까 작업하던 거 캡처해서 친구한테 메신저로 보낸 다음 어떠냐고 물어봐야 해요(웃음).
오래전부터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콜렉티브처럼 팀을 이뤄서 작업하시는 분들이 부러웠거든요. 그래서 팀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콜렉티브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떻게 모이게 되셨는지 여쭤본 적도 있어요. 그럼 다들 ‘잘 모르겠다’, ‘운인 것 같다’, ‘억지로 모아서 되는 게 아닌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그렇잖아요. 그런 모임이 오래 지속되는 이유는 인위적으로 결성한 게 아니라 서로의 작업을 좋아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였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냥 기다리고 있어요. 마치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것처럼요(웃음).
근데 제가 답변을 너무 길게 하고 있나요?
아뇨. 저는 좋아요(웃음).
또 걱정했어요. ‘아, 왜 이렇게 길게 대답하지?’ 이렇게 생각하실까 봐요.
아니에요(웃음). 그럼 작업 이야기를 이어서 해볼게요. 어떤 작업 환경을 선호하시나요? 작업하는데 필요한 조건 같은 게 있을까요?
일단 커피가 필요해요. 커피를 물 대신 마실 정도로 지나치게 많이 마셔요. 커피잔이 비워지면 다시 커피로 채우는 수준이에요. 예전에 회사 다닐 때는 도착해서 가방 내려놓고 회사 앞에 있는 카페에 가는 게 가장 첫 번째로 하는 일이었어요. 거기 커피가 맛있거든요.
음악도 들어요. 컨디션이 좋을 때는 선곡도 하면서 작업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기운 없을 때는 그냥 최근에 들었던 거 순서대로 틀어요. 선곡하는데에도 에너지가 쓰이니까요. 상태가 더 안 좋을 때는 음악을 아예 안 듣고요. 스스로 진단하기에 제가 음악을 안 듣는다는 건 컨디션이 많이 안 좋다는 뜻이에요. 음악조차도 소음이나 자극처럼 느껴진다는 거니까요. 아무튼 다들 작업할 때 음악 많이 듣지 않나요? 어떠세요? 제가 역으로 인터뷰해도 되나요(웃음)?
저는 단순한 작업을 할 때는 듣고, 집중이나 생각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안 들어요.
아, 완전 이해해요. 저도 시끄러운 소리를 잘 못 견뎌요. 회사 다닐 때도 그랬어요. 회사는 여러 사람이 있는 곳이잖아요.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제가 다녔던 회사는 분위기가 자유로워서 그런지 시끌벅적했어요. 활발한 친구들도 많고요. 물론 재미있고 좋은데, 저는 집중해야 할 때 주변에서 시끄럽게 하면 예민해지거든요. 그래서 몇 번 동료에게 조금만 조용히 해줄 수 있냐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저랑 2년 넘게 같이 일한 친구들이니까 다들 불편해 하지 않고 이해해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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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화학에 관한 이야기가 일기에 여러 번 등장했어요. 작년에 FDSC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지금 주목해야 할 디자이너 40’을 통해 해리 님이 화학공학을 전공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수학, 화학을 좋아하는 이유나 화학공학과를 전공하신 이유가 궁금했어요.
뭐부터 얘기해야 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수학과 화학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꿈은 항상 화가였어요.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저는 천재가 되고 싶었어요(웃음). 그때 제가 천재라고 생각하던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어요. 엄마가 가지고 계셨던 큰 화집이 있는데, 거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이 실려있었거든요. 제가 화집을 보다가 엄마한테 이 사람은 누구냐고 물어봤나 봐요. 그랬더니 엄마가 이 사람은 대단한 과학자면서, 동시에 그림도 잘 그리는 화가라고 말해줬어요. 두 가지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인 사람이라고. 그걸 듣고 저도 뭐든지 잘하는 천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웃음).
어렸을 때는 집에 실험 기구도 있어서 책 보면서 실험하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때 과학 탐구 대회 나가서 상도 타오고… 모범생이었어요. 수학 경시대회에서도 상 타고, 사생대회에서도 타고. 근데 천재는 되는 게 아니라 타고 난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웃음).
저는 제가 당연히 미대를 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 제가 고등학교 갈 때쯤 집이 많이 어려워진 거예요. 집도 팔고, 차도 팔고…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어요. 그러고 나니까 도저히 입시 미술 할 상황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과를 갔어요. 미술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수학이랑 과학이었으니까요. 이과에서 선택과목을 들어야 해서 그때 화학을 선택했어요. 대학에 갈 땐 화학과랑 화학공학과 중에 선택해야 했는데 왠지 공학이 좀 더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화학공학과가 공대 내에서 취업하거나 연구할 수 있는 범위가 비교적 넓어서요.
화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질과 물질이 만나서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된다는 게 멋져요. 마법 같고요. 또 화학 반응이 일어날 때 만들어지는 형을 보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대학교 다닐 때도 실험 수업을 좋아했어요.
수학은 명확하고, 숫자와 수학 기호들 자체가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생겼고… 그래서 좋아해요. 문제 풀이 과정을 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퍼즐, 스도쿠 같은 게임도 좋아해요. 요즘 정말 많이 하는 게임이 있어요. 매일 여러 가지 퍼즐이 업데이트되는 게임이에요. 종류가 엄청 다양해요. 전 그래픽은 휘황찬란한데 만나서 싸우기만 하는 게임은 싫어해요. 싸우긴 하는데 전략을 짜는 게임은 좋아하지만 치고받고 싸우기만 하는 건(웃음) 흥미를 못 느끼겠어요.
그럼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신 거예요?
화학공학과 졸업을 한 뒤에 취업할지 대학원을 갈지 고민했어요. 졸업 뒤에도 미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서 예술철학과나 미학과로 대학원에 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때까지도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냥 취업을 했죠. 대기업에 취업했는데, 6개월 다니다가 퇴사했어요.
일이 싫었던 건 아닌데 불합리한 상황도 많이 보고, 저 혼자 여자라서 겪은 안 좋은 일들도 있었어요. 제 입장에서는 이해 안 되는 게 너무 많았어요. 회사에서 누군가 실수를 해서 일이 터졌는데, 다들 그걸 수습할 생각보다는 다른 팀에 책임 전가할 생각을 먼저 하더라고요. 상사가 저한테 무조건 우리 팀 잘못이 아니라는 증거를 만들어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료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 팀 잘못인 거예요(웃음). 그래서 제가 “저희 팀 잘못이 맞는데요.” 그랬어요. 그땐 거기에 많은 것이 얽혀있다는 걸 몰랐죠. 아무튼 계속 그렇게 일하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퇴사를 했고, 그 후에 sadi에 가게 되었어요.
학교랑 회사에 다니면서 미술이 아니라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디자인을 학원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수능을 다시 보는 건 너무 큰 일이라서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sadi라는 학교에 포트폴리오 전형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하게 됐어요.
제가 포트폴리오라는 걸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포트폴리오 학원 가서 상담이라도 받아보려고 홍대 근처에 가본 적이 있어요. 학원 다니려면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들더라고요. 근데 학원 들어가는 길에 전시된 포트폴리오가 다 비슷비슷하더라고요. ‘이런 걸 만들려고 학원까지 다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만들었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포트폴리오를 내고 합격해서 sadi에서 공부하게 됐어요. 그땐 디자인 씬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일은 전혀 안 하고 그냥 열심히 학교만 다니다가 졸업했네요. 지금도 저는 디자인씬의 중심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꼭 씬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렸을 때는 중심에 있어야 일도 많이 받고, 잘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냥 자기 일 계속하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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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맥시멀리스트라고 칭하셨는데, 실제 삶과 디지털 세상은 주로 무엇으로 가득 차 있나요? 또 각각의 세상이 좁아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계속 무언가를 끌어모으는 사람인데 공간은 한정적이니까 점점 좁아지는 거죠. 예전에 말 그대로 책장이 무너진 적도 있었어요. 조립식 책장이었거든요. 판이 얇았는데 그 위에 계속 책을 올려놓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더라고요. 그래서 책장을 바꿨어요.
실제 삶에는 아마 책이 가장 많을 것 같아요. 책을 습관적으로 사요. 안 읽은 것도 많고 비닐을 안 뜯은 것도 있어요. 산 줄 모르고 또 산 책도 있고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인스타그램에 라이브 기능이 막 생겼을 때였어요.
어느 날 새벽에 침대에 누워있다가 책장을 바라봤는데, 아, 그땐 침대가 있었어요(웃음). 책장에 일본에서 사 온 책이 포장된 채로 있더라고요. 저는 일본에서 책을 사면 항상 포장해달라고 하거든요. 포장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해서요. 아무튼 그 책이 무슨 책인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사놓고 시간이 좀 지난 뒤였거든요. 그래서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키고 책 언박싱을 했어요. 뜯으니까 무슨 책인지 기억이 나서 뜯으면서 이 책을 왜 살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명했어요. 방송 보시던 분들도 책 이야기 너무 재밌다고, 다른 책도 소개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진 책도 꺼내서 보여주고, 일러스트 책도 보여줬어요. 이 책이 왜 멋진지, 어떻게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얘기하면서. 그때 사람들이 다음에도 또 해달라고 해서 몇 달 뒤에 또 라이브 방송을 한 적이 있어요.
디지털 세상에서는… 쓸데없이 캡처를 많이 해요. 중독같이. 사진보다 캡처가 더 많을 거예요. 그렇다고 캡처해놓은 걸 다시 보진 않아요. 좀 정리하고 싶은데 양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자꾸 아이클라우드 용량이 없다는 알림이 와요(웃음).
메모도 많이 한다고 하셨죠?
네. 지금 아이폰 메모장에… 메모가 오천오백 개 정도 있어요. 유의미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요. ‘내일 우산 챙기기’ 뭐 이런 것도 있고요(웃음). 저는 꿈도 다 기록해요. 잠을 잘 못 자서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에요. 일어나서 조금만 지나도 무슨 꿈을 꿨는지 잊어버리잖아요.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기록해야 해요.
메모 중에 ‘2021년 종합 운’도 있네요(웃음). 2021년 종합 운을 7월에 메모장에 붙여넣기 해놨어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제가 많이 힘들었다는 거예요. 힘드니까 흐름을 좀 알고 싶은 거죠. 그래서 2021년이 반이나 지났는데 종합 운을 결제해서 봤어요(웃음).
운세가 좀 맞는 것 같나요?
잘 모르겠어요. 아, 그래도 8월에는 점점 좋아질 거래요. 꽃들이 피어날 준비를 한대요.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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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질문은 교통사고에 관한 것인데요. 교통사고 이후 몸이나 마음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삶에 대한 태도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거나 하진 않아요. 교통사고 나고 충분히 쉬지 않고 일찍 회사에 복귀했어요. 그땐 교통사고를 처음 겪어봐서 후유증에 대해 전혀 몰랐죠. 제가 느끼기엔 활동할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았어요. 생각해보면 그때도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을 오래 안 하다 보면 영영 못 하게 될 것 같았어요.
사고 나고 한 2-3개월 지나고 나니까 갑자기 후유증이 오더라고요. 정말 아파요. 정확히 어디가 아프다고 설명하긴 힘든데, 몸살 났을 때처럼 매일 매일 눈 뜨자마자 아팠어요. 근육통 같기도 하고요. 병원 갈 시간이 없어서 치료도 못 받다가 퇴사하고 나서는 한 달 동안 병원만 다녔어요. 그러니까 좀 나아지더라고요.
새벽에 택시 타고 퇴근하다가 교통사고가 났어요. 아직도 어떻게 사고가 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그다음 날부터 휴가였거든요. 친구들이랑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어요. 친구들이랑 만든 단체 채팅방이 있었는데, 제가 교통사고 나서 다친 상황에서 그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나 사고 난 것 같아. 나 피가 나고 있어.’ 이렇게 딱 두 줄이요. 그러고 나서 정신을 잃었나 봐요. 그 채팅방에 있던 언니 한 명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랑 십 년 넘게 아는 사이거든요. 저희 부모님이랑도 알고. 그래서 저희 집에 연락한 거죠.
제가 머리를 부딪혀서 CT, MRI 다 찍었는데 기억은 하나도 안 나요. 머리를 부딪혀서 그런지 말투가 어린아이 같았대요. 어린아이 같았다는 게, 예를 들어 누가 ‘해리야, 이거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아니! 이거 말고 저거!’ 이렇게 단순하게 대답하는 식이요.
동생 말에 의하면 사고 난 다음 날 같이 바다에 가기로 했던 친구들이 다 병문안을 왔는데, 제가 울면서 ‘나 빼고 바다에 갔다 왔어? 나도 가고 싶어’라고 했대요. 그래서 친구들이 ‘바다 안 갔어, 다 취소했어.’ 이렇게 대답해주고(웃음). 거기다 대고 제가 또 ‘그럼 너희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라고 물어봤대요. 제 사고 소식 듣고 새벽부터 병원 와있으니까 당연히 피곤했던 건데(웃음). 그런데도 제가 계속 ‘바다 가고 싶다’, ‘바다에 갈 수 있는데 왜 못 가게 하냐’라고 떼를 써서 친구들이 다이소 가서 불꽃놀이 세트를 사 왔어요. 그걸로 잠깐 밖에 나가서 불꽃놀이하고…. 교통사고 이후 하게 된 생각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과 더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는 거? 친구들에게 아주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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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례식장 입구에 풍선 인형을 세워놓고 싶다고 하신 것도 기억에 남아요. 해리 님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 풍선 인형을 외국에서는 ‘튜브가이’라고 부르나봐요.
‘튜브가이’를 장례식장 입구에 두고 싶은 이유는 장례식이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장례식에 대해 생각한 건 오래 안 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라는 영화가 있는데, 소녀와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와요. 그중에 한 친구가 죽게 되는데 죽기 전에 친구에게 자기가 원하는 장례식의 모습에 대해 설명해요. 남은 친구는 죽은 친구가 원했던 모습의 장례식을 치러주고요. 우리나라로 예를 들면 해장국 대신 파스타가 나오는 식이에요. 저는 그런 게 되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어,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장례식을 생각하니까 그런가 봐요.
재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외할머니가 지방에 사셔서 저랑 교류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연결되어있는 것 같았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장례식장을 지키는데… 저는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까만 옷 입고 가서 절하고, 그런 절차로서의 장례식만 생각해봤지 실제로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건 처음이었어요. 너무 이상하더라고요. 존재하고 있던 게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게다가 요즘엔 상조회사 같은 전문 회사가 이것저것 해주잖아요. 그들에겐 이 모든 게 시스템화된 무언가라는 게 이상했어요. 우리 다음에도 다른 가족이 기다리고 있고, 공간은 몇 시까지만 사용할 수 있고…. 화장할 때는 더 말도 안 돼요. 전 블랙코미디인 줄 알았어요. 은행 업무 보듯이 가족들이 번호를 기다리는데 심지어 옆에는 사람들 쉬라고 카페도 있어요. ‘이게 뭐지?’ 싶었어요.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장례식 같은 의식이 왜 생겼을까 생각해 봤거든요. 되게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도 식을 치르는 이유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래서 일부러 더 불편하고 슬프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아무튼 저는 제가 죽으면 남아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요.
유서 생각은 되게 옛날부터 했어요. 무거운 의미에서는 아니고요. 사실 생각만 하고 제대로 쓴 적은 없어요. ‘유서를 써야겠다’라는 내용의 메모는 많아요. 지금 찾아보니까 2019년 1월에도 ‘유서를 써둘까? 유서를 써서 프린트해놔야 하나?’ ,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써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런 내용의 메모가 있고요. 2020년 5월에도 비슷한 메모가 있네요. 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유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다행히 지금은 여기 이렇게 존재하지만, 작년에 교통사고로 죽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친구들,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미리 써두고 싶은 거죠. 유서는 한 번 쓰고 끝내는 게 아니라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고, 새로운 친구들이 생길 수도 있고, 누군가와의 관계가 틀어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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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일기를 쓰시나요? 일주일 동안 일기를 쓴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매일 매일 쓰진 않고요. 가끔 메모장에 써요. 오랜만에 쓰니까 재밌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떻게 쓰지, 싶었는데 쓰다 보니 익숙해졌어요. 또 일기를 재밌게 읽으셨다고 해주셔서 좋았어요. 소설 같다고 하셨잖아요. 제 문체가 좀 그런가 봐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일기 쓰셨는지 궁금해요. 그런데 여전히 걱정되네요. 일기가 너무 우울하다고 느낄까 봐.
저는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장례식이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오히려 튜브가이 때문에 경쾌한 느낌이었어요(웃음).
제가 친구한테 장례식 얘기하니까 친구가 자기가 살아있으면 부조금 안 내고 식사 나르겠다고, 방명록도 웹사이트로 만들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너 무조건이야. 내가 유서에도 써놓을 거야.” 그랬어요. 아, 튜브가이도 잘 설치되어있는지 확인해준다고 했어요. 시안대로 잘 설치돼있는지. 그 친구도 디자이너거든요(웃음). 그래서 꼭 좀 부탁한다고 했어요.
-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깼다. AI 음성의 광고 전화라서 바로 끊었지만, 덕분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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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에는 올림픽이 개막했다.
개막식부터 경기까지 보지 않아도 인터넷 세상, 미디어에서 올림픽 소식을 초 단위로 전하기 때문에 편집된 정보들로 극적인 장면과 결과를 본다. ‹Tokyo ‘2020’ Olympics› 라는 이름 때문에 시공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지금은 시간을 억지로 잡아끈다면 2020년 12월 604일일 것이다. 그러다가는 파일명에 붙어있는 _210726 날짜를 보고는 ‘아 그래 2021년이었지.’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곧이어 지금도 진행 중인 전염병의 처음에 대해 떠올리곤 한다.
아아 사람들이 뭔가 위험한 질병에 걸리고 있대. 여기는 아직 병에 걸린 사람이 드물다지만 위험하니 마스크를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조금 귀찮아하며 마스크를 쓰더니 점차 대중교통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고 곧이어 사람이 죽어나가고 우리는 시체를 놓을 공간이 없어 다른 용도의 건물 안에 놓인 조용하고 무서운 이미지를 봤다.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기 시작하고 전염병을 다룬 영화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로 시작하는 기획 전시들이 있었다.
2020년 여름에는 영국에서 오랜만에 긴 휴가를 보낼 생각으로 2020년 1월에 비행기 표를 예매해 두었지. 우주 도시처럼 보인다는 카타르의 도하가 궁금해서 그곳을 경유해 갈 생각이었다. 2020년 2월에는 친구의 공연이 일본에 있어, 같이 일본에 갈까 생각했었는데 바빠서 가지 않았다. 그게 조금 아쉽다.
7월 초에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내내 인터넷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국궁장’을 검색하며 곧 회원이 되어 활을 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연일 양궁 선수들의 활약을 보고 있자니 더욱 활을 쏘고 싶다. 예전엔 사격 좋아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총이며 활이며 다 쏘는 거네. 멋지지 않나. 총을 좋아하는 건 수학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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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ㅏ 더위가 싫다. 정말 더위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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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온라인 미팅 두 개를 했고, 수요일에 있을 오프라인 미팅 하나가 다음 주로 미뤄졌다.
메일을 세 통 쓰고 SNS로 DM을 주고받았다. 내일 퀵으로 받아야 할 물건에 관한 문자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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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를 어느 정도 끝내며 생각했다. 대부분의 날에는 아무런 위협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냥 (살)하던대로 (살아)해나가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하튼 나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생각한다. 모든 사소한 것들로부터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순간이 고통이고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모순되게 하늘이 조각나 버릴지 땅이 꺼질지 우려한다. 계-속. 때문에 10분마다 스스로 ‘아냐.’ 라고 말해야 한다. 아아 정말 딱 맞는 글귀가 있었지. “현재가 결국 아무런 특수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폭발적인 충격의 연속이라고” 어떤 책에서 이 문장을 메모해 두었다. 그 책에서 어떤 철학자의 책을 인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도 저 책도 무엇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국 오늘도 내가 걱정하던 모든 일 중 하나도 일어난 일은 없었다. (×_×) 피곤하다. 푸딩 먹고 싶다. 커스터드 푸딩. 오리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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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3시쯤 잠들었는데 오늘 아침 7시 반에 눈이 떠졌다. 블라인드를 치지 않아서 해가 이미 내 몸의 반을 덮고 있어 뜨거웠고, 왠지 가족들이 부산스러운 아침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자는 건 애매해서 일단 하루를 시작했다.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종일 졸리지만 잘 수 없는 상태로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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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로 된 약이 있었다. 3주 전인가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업로드 된 오메가쓰리 통을 봤다. 그다음 스토리는 그 통에서 나온 젤리였다. 난 젤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약이 태블릿 형태가 아니라 젤리라면 완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비타민이나 영양제는 종류가 참 많지. 비타민 B, C, D, 루테인, 철, 마그네슘 등. 알약은 한번에 먹으면 꼭 목에 걸려서 한 번에 작은 두 알까지 가능하다. 물로 배를 채우는 건지 약을 먹는 건지 모르게 되니까 필요한 약이라고 다 먹을 순 없다. 그런데 성인용 젤리 영양제라니 완전히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 스토리 이미지는 3주 전에 스쳐 지나가 버려서 기억 속에만 남아있었다. 그 영양제 브랜드를 알아내서 주문하고 싶은데, (기억 속)정보는 불투명한 흰색 플라스틱 약통에 흰색에 가까운 밝은 회색 면, 짙은 회색 선이 주가 된 디자인, 그리고 아마 그 브랜드에서 나오는 다양한 약을 구분하기 위해 부여된 색깔 라인이 있었던 것밖에는 없었다. 갑자기 당장 그걸 찾아서 결제하고 싶었다. ‘jelly vitamin white bottle adult’라고 검색해도 수많은 이미지 사이에 답은 없었다.
오늘은 영양제를 잘 챙겨 먹고 평소 건강에 관한 정보에 해박한 지인에게 그런 약을 파는 브랜드를 아는지 물으니 연달아 나에게 이미지를 보내왔다. 처음에는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있는 아동용 젤리 비타민 이미지가 왔고, 나는 어린이용도 아니고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다는 것을 시작으로 스무고개를 하듯 하나씩 말했다. 그가 뒤이어 보내오는 상품 이미지가 점차 기억 속의 약통 패키지와 얼추 비슷해져 가는 과정이 좀 웃겼다. 그럼에도 분명히 내 기억 속 약통은 아니었다.
만약 정답인 이미지를 보면 나는 그것을 내가 찾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내 기억 자체가 완전하지 않은걸. 기억 속에서 디자인이 바뀐 건 아니려나. 흐릿한 걸 붙들어놓으려면 그때 그 스토리 캡처를 해야 했는데.
메모가 나의 자산이고 실제로 많이 있지만, 메모 대신 캡처가 더 나아 보일 때는 이미지 캡처를 하는데 그건 너무 많이 쌓여있어서 오히려 다시 꺼내 보지 않는다. 용량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아 아주 오래된 것부터 지우려는 마음으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각종 플랫폼의 오래된 UI가 가진 과한 둥글림과 투박함이 그 시간 자체를 박제한 것 같아서 결국 못 지웠다. 마치 방 정리를 하다가 온갖 과거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추억에 잠기기만 하고 다시 뚜껑을 닫는 것 같다. 나는 실제 삶과 디지털 세상 양쪽에서 당당하게 맥시멀리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용량(평수)만 크다면 좋지 않을까. 넓은 곳에서는 이것도 그리 많은 양이 아닐지도. 상대적인 거니까.
지금은 너무 좁다. 그래서 그때 캡처를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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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구글 서버가 잠깐 다운되면서 지메일로 연동된 수많은 플랫폼, 드라이브 접속이 불가능해졌을 때 다들 두 손 놓고 기다리다가 조기퇴근을 했다던데, 카카오나 네이버 연동도 많고 이젠 다들 돈도 0과 1의 세계에 묻어두니까 의외로 세상을 멈추기 쉬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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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 인용구(“현재가 결국 아무런 특수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폭발적인 충격의 연속이라고”)의 주인은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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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많았는데 컨디션이 엉망이라 효율이 별로다. 산책할 겸 나갔다가 편의점에서 ‘활력’으로 시작하는 드링크를 봤다. 아마 비타민 함유량이 적지만 왠지 기운이 날 것 같은 다른 비타민 드링크와 비슷한 거겠지. 그래도 역시 ‘활력’이 붙어있으니 특별히 활력이 나길 기대하면서 사 마셨다. 비타민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음악 틀고 아름다운 유리 꽃과 유리 새 이미지를 봤다. 책을 결제했다. 그리고 맛있는 사진을 공유했다. 좀 나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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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일기에 뭔가 잘못된 것이 없을까 해서 맞춤법 검사를 했다. ‘오메가쓰리’를 ‘오메가소매치기’로 대체하지 않겠냐는 친절한 팝업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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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친구의 촬영 로케이션 취소 이야기를 들었다. 촬영일 바로 전날에 장소를 바꾸어야 했는데, 갑자기 그 장소에 지뢰가 나왔단다. 지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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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체로 디자인해보고 싶다. 오이 샌드위치도 먹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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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두 개 있었다.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게임을 하다가 곧 마감해야 하는 일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나 간단히 메모하고 다시 게임을 했다. 게임은 평범한 농장 가꾸기 게임이다. 농작물을 심고 과일을 수확하고 양봉을 하고 낚시를 하고 가축에게 사료를 주고 우유, 달걀, 양모, 베이컨을 얻고 그것들로 케이크, 파이, 잼, 옷을 만들어 팔거나 퀘스트를 수행하는. 가끔 정해진 시간 안에 빠르게 목적을 달성해서 아주 바쁘다. 최근에는 우주에 공장을 설계해서 자원을 캐고 연구해서 합성하는 게임까지. 조금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었으면 했는데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다른 걸 했다. 뭐든 머리에 넣어뒀으니 관계없는 행동을 하는 동안에 대뇌가 잘 정리해두겠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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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으악!”을 외치면서 쉬지 않고 일했다. 중간에 타임라인에 ‘으악’을 심고 사라졌다. 새벽에 드디어 ‘으악’을 끝내고 이불로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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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화학은 정말 아름다운 학문이다. 오늘은 브로민(브롬)과 알루미늄의 반응을 봤다. 그리고 속이 시끄러울 땐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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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정보만 정확하게 있는 것 좋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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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를 사러 마트에 갈 때 꽃을 사올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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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 우우래~ 우울~~ 우우 우우래 이런 가사로 귀여운 음향 효과와 유포리아 멜로디가 기반인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 보컬은 톤이 중성적이고 기교가 없이 불러서 건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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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너무 아프다. 조용하고 안락한 공간에 누워 많은 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싶다. 힘들어서 따뜻한 안부의 말에도 답을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그리고 어쩌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연락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잘도 답했다. 뒤집고 싶다. 잘도 울고 잘도 웃는다. 뒤엎고 싶다. 말은 덜 하고 글은 많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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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팔을 베개 삼아 모로 누운 채로 Weird Spotify Playlists를 훑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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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나 법인이나 스스로 ‘위트있는’, ‘재치있는’ 이라고 수식하고 실제로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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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작업실 동료와 보드게임을 하고 싶었다. (작업실도 동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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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에 대해 생각한다. 6년 전부터 매년 유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쓴 적은 없다. 하지만 정말로 써야만 한다.
여하튼, 내 장례식 입구 모습은 정했다. 아마 모친과 부친보다 먼저 죽게 된다면 이 안은 반려당할 것이 뻔하지만. 그리고 장례식 디저트는 커스터드 푸딩이다. 사진을 보여주며 친구에게 말하니 친구는 부조금을 내는 대신에 식사를 나르고 내 계획대로 입구가 잘 설치되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방명록도 만들어 줘. 마음에 드네. 영혼으로 방문해야지.’ 같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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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이 2019년 5월에 상하이 아트 북 페어에서 토크했던 걸 2019년 7월에 업로드한 이미지를 MEMORY라며 보라고 권하길래 보고는 갑자기 휴대폰에서 2019년 5~7월의 사진을 보고 있다. 엄청나게 바쁘고 정신없이 보냈던 시기인데 사진은 되게 재밌게 잘 사는 것으로만 보인다. 상하이로 출국할 때부터 집에 올 때까지 사진을 쭉 보여주며 여행하듯 동생에게 설명했다. 상하이에서의 사진들 중간에 업무 관련하여 한국에서 보내왔던 사진, 중국에 한국의 은행 지사가 있다는데, 그 은행의 본점을 찾아야 해서 지도를 캡처한 것, 잊으면 안 되는 스케쥴 캡처한 것이 끼어 있는 게 정말 다시 그 시간으로 간 것 같아서 좋았다.
중국에서 뭔지 모르겠는데 디자인이 재미있어서 며칠간 사 마셨던 음료수 사진도 봤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코코넛 음료인데 꽤 맛있다. 지금도 이름은 모르겠다. 중국 음료수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늘 음료수에 대해 “물처럼 마시고 싶게 하면서 물처럼 마시면 안되는 걸.” 이라는 글을 봤다.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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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서인지 최근 집 근처 고양이 친구들이 안 보인다. 낮에는 그늘에 있다가 밤에 활동하는 모양이다. 밤 산책을 하면 종종 여기저기서 만나는데. 내가 가지는 커다란 자부심. 고양이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밤 산책이 참 좋은데,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에는 지하철역 네 정거장에 걸친 산책로가 있어서 1시간 정도를 걸어서 지하철을 타기도 했었다. “밤산책 파티원 구합니다!” 라고 말하니 종종 친구들이 합류해줬다. 걸으면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웃었다. 지금은 너무 더워져서 산책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대단히 큰 용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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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답을 못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걱정되었다니 정말 따뜻하지. 그리고 복숭아를 내게 보냈다. 작년 이맘때 교통사고를 겪고 누워 있을 때도 복숭아를 내게 보냈지. 그래서 내가 그 친구를 휴대폰에 ‘수리기사’라고 입력해 두었다. 때가 되면 잘 있는지 점검을 하고 무언가에 허덕이고 있으면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오도록 도와주는 탁월한 수리기사이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처음엔 이름도 주소도 기억 못 했다고 한다. 나는 회복하면서 기억을 짜 맞추어 갔다.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중요한 사람들과 사건을 잊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내 병상에 누워 사진, 메모, 문자, 메일을 복습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대뜸 ‘당신은 이러저러한 사람이죠. 기억하고 있어요.’라는 말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기억이 거의 다 돌아오고 그때의 기록을 보면 아직 문장을 잘 꾸리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글 같고, 두서가 없다. 그럼에도 교통사고 당시의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사고였는지조차 모르겠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받았던 기억도 없다. 충격적인 사건은 뇌가 지워주기 때문이라는데, 그리고 꿈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나는 기억을 잃으면 안 된다고 눈을 부릅뜨고 사건 현장을 눈에 넣으려고 했다. 물론, 사고가 나기 직전에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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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고 싶다. 흘러가고 싶다. 흘러가게 놔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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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시작이다. 날짜는 인간이 억지로 시간을 숫자로 나눠 놓은 것인데, 덕분에 1년에 열두 번 조금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끝과 시작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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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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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살 것이 없어도 서점, 각종 문구, 장난감 파는 코너에 들르는데 며칠 전 ‘미스터리 캡슐’ 이라는 것을 천 원 주고 샀다. 캡슐 안에 각종 동물이 들어있어서 뜨거운 물에 캡슐을 넣어두면 녹으면서 안에 있는 내용물이 튀어나와 커지는 장난감인데, 어린 시절에 고흡수성 폴리머로 만들어진 공룡이 물을 먹고 몇십 배의 부피로 커지는 것을 보고 좋아했던 것이 생각나서 샀다. 오늘 실험해보니 스펀지였고, 그다지 커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평면에 두께를 준 것뿐이고 사방이 입체로 조각된 형태가 아니어서 조금 실망했다. 고흡수성 폴리머를 어린이 장난감으로 하는 것보다는 안전해 보이지만 놀랍도록 커졌으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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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비가 시원하게 오고 있는 모양이다. 내일도, 모레도. 덕분에 37도까지 오르던 최고 온도는 낮아지겠지. 비가 쏟아졌으면 했는데 잘됐다. 이번 달의 일정을 가늠해 봤다. 쉽지 않겠지만, 조금씩 후련해지길 희망한다. 가을 냄새가 날 때 즈음에는 아마 그럴 것이다. 10월의 향, 좋아하는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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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XR 촬영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XR이라니. 알파벳 자체가 미래적으로 생겼다. Augmented Reality, Virtual Reality 그리고 Extended Reality(Mixed Reality). 수많은 현실. 진짜 세상에 살면서 더 진짜같은 걸 모두가 기대하는 매일이다.
내가 게임에서 설계하고 발전시켰던 도시에 대해 생각한다. 돈을 벌고 더 좋은 건물을 지어주고 상하수도 시설과 소방시설을 설치해주고 돈이 모자랄 때는 열심히 무역으로 돈을 벌어 시민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도시를 보완한다. 아무리 공격적인 플레이를 해도 돈을 못 벌면 수리해야 할 도로가 방치되어있고, 필요한 건물을 짓지 못해서 시민이 울상을 짓는데 나도 마음이 아프다. 당신들을 웃게 해주고 싶어요.
꽤 오래전부터 내가 게임, 가상 현실에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때가 있다. 타이쿤류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가?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외부 상황으로 너무 괴로울 때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존재도 분명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겠지. 지금 뭔가 문제가 생겨서 잠시 안 되는 거야. 곧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구 플레이어에게 직접 요청을 할 수 있으면 하는데. 지구가 문제가 많아요. 물론 인간 때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