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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Pfizer 백신 1차 접종을 했다. 맞기 전에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물어서 오른손잡이라고 했더니 왼쪽 어깨에 맞았다. 주삿바늘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왼쪽으로 누워서 자는데 어쩌지?’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늦었다. 사실 며칠 전에 큰일을 끝내고 쉬어가는 중이라 하루 중에 오른손을 사용하는 시간보다 왼팔을 베고 자는 시간이 더 길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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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를 맞은 지 네시간이 되어갈 때쯤 맞은 부위 주변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근육에 힘이 쭉 빠져서 팔도 겨우 든다. 뻑뻑한 청바지를 오른팔 힘에 의지해 겨우 벗다가 3년 전 손목증후군이 찾아왔을 때가 생각났다. 한국에서 혼자 전시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손목 안쪽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 후로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낫지를 않아서 작업을 오랫동안 쉬었다. 손에 힘을 주기도 어렵고, 간혹 힘을 잘못 주면 손목 안을 찌르는듯한 통증 때문에 요리할 때 양파를 써는 것도 못 해서 동거인에게 부탁해야 했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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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018년을 쭉 쉬면서 보낸 것 때문에 지금도 내 이력서의 2019년은 텅 비어있다. 학교도 안 다녔고, 레지던시도 없고, 출판물도 없고, 독립출판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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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은 어제 맞았는데, 팔은 하나도 안 아프지만 힘이 없고 별로 한 것도 없이 피곤하다고 한다. 부디 이 밖에 다른 후유증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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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달리 건강 상태가 괜찮다. 왼팔이 아직 잘 안 들어지긴 하지만 오른팔이 아니라 다행이다. 오늘은 집에서 푹 쉬려고 했기 때문에 예정대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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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곧잘 한다. 작년부터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판데믹 때문인지, 그럴 나이가 되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변했다. 아직 부족하지만 성격이 조금 더 외향적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서 일상생활도 조금 더 편해졌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성장하지는 않지만, 생에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걸 느낄수록 어느 쪽이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조금 더 쉬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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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간만에 카페에서 얼굴 마주 보고 미팅을 했다. 작업 때문은 아니고, 프랑스에서 미술학교를 곧 졸업하는 외국인 학생들의 비자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 작은 컨퍼런스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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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를 졸업할 때는 비슷한 때 졸업한 한국인들은 대부분 귀국하거나 다른 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기 때문에 비자에 관해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는 이래서 받았다더라, 저래서 못 받았다더라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만 듣는 게 지겨워 10년 전에 졸업한 분들도 수소문해서 찾아가 봤지만, 그 사이에 비자도 변해서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체류증을 받으면 꼭 나와 같이 헤매는 분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4년 만에 드디어 자리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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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에 줌으로 열기로 했는데, 1년 넘게 기다린 일이라 드디어 끝이 보이는 게 무엇보다 기쁘다. 처음에는 외국인 학생들끼리 만나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를 상상했었는데, 일러스트레이터 지원 단체에 한 번 해보자고 제안하고 프랑스 거주 무비자 외국인들을 도와주는 단체를 초대하면서 일이 이렇게 커지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내 경험담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일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인 만큼 화려한 언변 없이 말해도 잘 이해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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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뒤, 한 시간 정도 더 남아서 각자의 자매 형제들에 대해서 수다를 떨었다. 모두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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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시내 서점에서 하는 한 팬진 런칭 행사에 갔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집을 나섰다. 서점 앞에는 작은 판매 부스도 설치되어있었다. 학생들이 만든 팬진들을 구경하다가 그중 한 작가에게서 귀여운 팬진 두 개를 샀다. 작년 판데믹 이후 예정되어있던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어서 일 년이 넘게 제대로 된 페스티벌을 간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예전처럼 책 구경하고 서서 작업 얘기를 나누면서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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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오랜만에 나와 동거인이 좋아하는 크레올 음식 Rougaille Saucisse를 만들어 먹고 아이슬란드 감독 Solveig Anspach의 영화 Back soon을 봤다. 내가 좀 능청스러운 유머에 약한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시치미떼는 감독의 유머 감각에 완전히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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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마르세유로 짧은 휴가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머물곳을 찾는다는 얘기를 했는데, 오년전 하우스메이트한테서 연락이 왔다. 자기가 마르세유에 사는데 마침 같이 사는 친구가 집을 비웠으니 우리집으로 오라고. 이사나온 뒤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잘 못 봤던 친구인데 선뜻 초대해주니 반갑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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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마르세유 서점 직원의 메세지도 받았다. 한달 전에 내 원화 30점 가량을 실수로 쓰레기통에 버려서 영영 찾을 수 없게 만든 장본인이다. 원래 이 서점에서 내 첫 그림책 «Papa Ballon» 원화 전시회와 사인회를 할 예정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된 후 예정되어있던 이벤트들은 전부 취소하고 어떻게 피해보상할지 기다리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서점 직원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하길래 금방 해결될줄 알았는데, 한달이 다 되도록 진척이 없더니 이제는 죄없는 출판사에 책임을 미루면서 버티고있다. 그러다 내가 마르세유에 온다는걸 알고는 이제서야 정말 미안하다며 인스타그램 메세지를 보낸다. 자기 집에 머물러도 좋고, 책 사인회를 예정대로 하고싶으면 와도 좋다고 한다. 기가 차서 그냥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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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기분 전환하러 동네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이곳 키오스크에서 올 여름 동안 매주 재즈공연을 한다. 모르는 어린이들이 야생동물처럼 뛰어노는 사이에서 기분 좋게 공연을 즐기다가, 파리에서 온 친구가 와서 다 같이 수다를 떨었다. 온 도시 테라스가 꽉 차서 자리를 찾기가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식당에 가서 식사도 했다. 기분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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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가 아버지의 마지막 출근이라는 얘기를 어머니께 전해 들었다. 32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하신 분은 마지막 수업 때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 주말에도 책상에 앉아서,공부하시던 아버지. 어머니도 일하는 걸 좋아하셔서 말에도 일과 관련된 책을 읽거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지만, 아버지는 매년 똑같은 수업인데도 그때마다 또 새롭게 준비하셨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 가족들과 다 같이 통화할 때 퇴직을 앞두고 마음이 시원섭섭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났다. 아버지를 위해서 작은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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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준비하는데 자꾸만 7월에 할 일, 8월에 할 일, 새 학기(9월-)에 할 일 리스트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 스위치를 제때 단호하게 끌 수 있을까. 휴가 중에도 혼자 가만히 있면 관성대로 일과 관련된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러다 번아웃이 오기 전에 이번에는 부디 제대로 푹 쉬고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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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도시에도 이제 제법 중고옷가게가 많이 생겼다. 아직은 가게보다 손님이 많아서 옷을 보러 가면 입구에서 십분 넘게 줄을 서야 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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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앞두고 새 여름옷을 찾아서 시내를 돌아다녔다. 오늘은 동거인 옷, 내일은 내 옷을 고르기로 했다. 마음은 이미 완전히 바캉스라서 우리 도시인데도 여행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점심에는 피자와 샐러드를 먹고 저녁에는 케밥을 먹었다.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마음이 들떠서 곧 잊어버린다. 테라스에서도 길에서도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웃고있다. 드디어 여름이 왔다는 실감이 난다.
박새한
박새한은 1989년 부천에서 태어나 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살며 활동하고있는 한국인 일러스트레이터이다. 2017년에 라인고등미술학교(HEAR)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를 졸업했으며, 2021년 출판된 첫 그림책 “Papa Ballon”은 ADAGP 그림책상을 받았다.
Instagram@saehan_parc
E-mailsaehan999@gmail.com
박새한은 1989년 부천에서 태어나 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살며 활동하고있는 한국인 일러스트레이터이다. 2017년에 라인고등미술학교(HEAR)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를 졸업했으며, 2021년 출판된 첫 그림책 “Papa Ballon”은 ADAGP 그림책상을 받았다.
Instagram@saehan_parc
E-mailsaehan999@gmail.com
(-8시간)
Strasbourg, France
Summer Vacance!
- Diary
- Interview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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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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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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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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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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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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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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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Interview
T
코로나 19 이후 새한님은 프랑스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프랑스의 코로나 현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S
프랑스는 작년 3월에 처음 락다운을 한 뒤 지금까지 락다운이 세 번 정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집 밖에도 아예 못 나가도록 규제가 되었는데, 락다운이 두 세 번 반복되면서 해이해진 것 같아요. 규칙 안 지키는 사람들도 많고요. 다행히 이제는 백신이 들어와서, 저와 제 주변 사람들도 다들 백신 접종을 하고 있어요. 요즘 분위기는 완전 여름 바캉스 같아요. 아무도 마스크 안 쓰고, 휴가나 여행도 가고, 파티도 하고. 아직 클럽이나 페스티벌 같은 곳은 집합 금지를 시행하고 있는데 그런 점 빼고는 거의 예전의 삶을 되찾았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아,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어요. 최근에 제가 다녔던 학교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어요. 프랑스는 6월이 졸업 시즌이라 졸업 심사를 다 이 때 하는데요. 졸업 심사위원으로 외부에서 초대된 아티스트 한 분이 델타 변이에 감염되었던 거예요. 그 사람이 심사 보고 나서 네다섯명에게 전염이 됐어요. 그래서 학교 문도 닫고, 예정된 졸업 심사도 모두 취소됐어요.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에 클러스터(Cluster)가 발생했다고 뉴스에 보도도 됐고요. ‘이게 무슨 일인가’하면서 뉴스를 봤던 기억이 있어요.
아,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어요. 최근에 제가 다녔던 학교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어요. 프랑스는 6월이 졸업 시즌이라 졸업 심사를 다 이 때 하는데요. 졸업 심사위원으로 외부에서 초대된 아티스트 한 분이 델타 변이에 감염되었던 거예요. 그 사람이 심사 보고 나서 네다섯명에게 전염이 됐어요. 그래서 학교 문도 닫고, 예정된 졸업 심사도 모두 취소됐어요.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에 클러스터(Cluster)가 발생했다고 뉴스에 보도도 됐고요. ‘이게 무슨 일인가’하면서 뉴스를 봤던 기억이 있어요.
T
프랑스에서 미술 학교를 다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입학하게 되셨는지, 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하셨는지 궁금해요.
S
저는 HEAR(Haute école des arts du Rhin)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석사 졸업을 했어요. 한국에서 미술 대학에 다니면서 막연하게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검색도 해보고, 유학원에서 상담도 받으면서 찾은 학교가 HEAR이었어요. 프랑스가 워낙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당시 선택지가 프랑스와 독일밖에 없기도 했어요. 다른 나라는 학비가 너무 비싸서 마땅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두 나라 중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HEAR이 마침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있는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학교에 아뜰리에가 아주 많아요. 실크스크린 공방이라든지, 판화 공방이라든지. 테크니션이 항상 상주하고 있고, 학생들이 가서 작업 상담도 받으면서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구조예요. 테크니션의 실력이 좋고, 작업실끼리 협업도 잘 이루어지는 분위기라서 그런 측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학교에 아뜰리에가 아주 많아요. 실크스크린 공방이라든지, 판화 공방이라든지. 테크니션이 항상 상주하고 있고, 학생들이 가서 작업 상담도 받으면서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구조예요. 테크니션의 실력이 좋고, 작업실끼리 협업도 잘 이루어지는 분위기라서 그런 측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T
HEAR에 입학한 게 언제였나요?
S
학교에 입학한 건 2013년이었고, 프랑스에는 2011년에 왔어요. 2년 동안 프랑스어 공부도 하고, 입학시험도 보면서 지냈어요.
T
제가 3년 전에 새한님을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에서 뵈었거든요. 그때 처럼 가끔 한국에도 들어오시는 건가요?
S
아, 정말요? 한국을 안 들어간 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마지막으로 갔던 게 2018년,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참가했던 때네요. 당시에 한 번도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참가한 적이 없어서 많이 궁금하기도 했었고요. 또 한국에 들어가면서 ‘비행기표 값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에(웃음) 참여하게 되었어요. 언리미티드에디션은 제가 참여했던 페스티벌 중에 가장 규모가 컸는데요. 행사를 보러 오는 사람들도 부스를 대충 훑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작업을 하나하나 펼쳐보고, 궁금한 점도 물어봐 주시더라고요. 정말 좋았어요. 또 참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언제 한국에 갈지가 불투명하네요. 내년쯤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한국에 자주 들어가지는 못해요. 비행기표 값도 그렇고, 최근에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도 생겨서요. 가능하다면 매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있죠.
한국에 자주 들어가지는 못해요. 비행기표 값도 그렇고, 최근에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도 생겨서요. 가능하다면 매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있죠.
T
새한님은 한국과 프랑스, 각각의 나라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S
‘나라’보다는 ‘도시’의 관점에서 생각해요. ‘한국’과 ‘프랑스’가 아니라 ‘서울`과 ‘스트라스부르’로요.
저는 한 번 거주지를 옮기면 그곳에서 비교적 오래 살았어요. 고등학교가 기숙학교라서 3년을 같은 곳에서 살았고요. 대학교도 천안에 있어서 천안에서만 3~4년을 살았어요. 스트라스부르에서 살게 된 지도 거의 9년이 다 되었고요. 또 지금은 인천에 집이 있지만, 나고 자란 곳은 부천이라서 저 자신을 부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게는 각 ‘나라’의 인상보다는 ‘도시’의 인상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는 도시마다 분위기와 인상이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라는 나라를 어느 하나로 특징지어서 얘기하긴 어렵긴 해요. 아무튼 프랑스에서 살다가 한국에 갔을 때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주변을 둘러봤을 때 한국인밖에 없다는 거예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대부분 검은색 머리를 하고, 모두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요. 한국에서는 전철을 타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다 들리잖아요. 그런 상황도 신기해요. 지금은 프랑스어가 익숙해져서 큰 노력 없이도 프랑스어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래도 한국말처럼 잘 들리지는 않거든요.
주변 상황 말고, 저 자신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해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외국어를 몇 개씩 구사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언어를 쓸 때마다 다른 성격이 나온다’라는 말이요. 제 생각에 저는 한국어를 할 때보다 프랑스어 할 때 조금 더 외향적인 것 같아요.
저는 한 번 거주지를 옮기면 그곳에서 비교적 오래 살았어요. 고등학교가 기숙학교라서 3년을 같은 곳에서 살았고요. 대학교도 천안에 있어서 천안에서만 3~4년을 살았어요. 스트라스부르에서 살게 된 지도 거의 9년이 다 되었고요. 또 지금은 인천에 집이 있지만, 나고 자란 곳은 부천이라서 저 자신을 부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게는 각 ‘나라’의 인상보다는 ‘도시’의 인상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는 도시마다 분위기와 인상이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라는 나라를 어느 하나로 특징지어서 얘기하긴 어렵긴 해요. 아무튼 프랑스에서 살다가 한국에 갔을 때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주변을 둘러봤을 때 한국인밖에 없다는 거예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대부분 검은색 머리를 하고, 모두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요. 한국에서는 전철을 타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다 들리잖아요. 그런 상황도 신기해요. 지금은 프랑스어가 익숙해져서 큰 노력 없이도 프랑스어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래도 한국말처럼 잘 들리지는 않거든요.
주변 상황 말고, 저 자신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해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외국어를 몇 개씩 구사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언어를 쓸 때마다 다른 성격이 나온다’라는 말이요. 제 생각에 저는 한국어를 할 때보다 프랑스어 할 때 조금 더 외향적인 것 같아요.
T
일기에 적혀있던 ‘생에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걸 느낄수록 어느 쪽이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조금 더 쉬워진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삶의 방식에 대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나 전과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S
음…. 그때 느꼈던 느낌을 솔직하게 쓴 거라서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이 어떤 건데?’라고 물어본다면 정리해서 얘기하기는 힘들고요. 그냥 제 감정에 관해서 말해보자면, 사람마다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 얘기를 할까 저 얘기를 할까 망설이다 시간이 지나가고, 그러다 보니까 내향적인 사람이 된 게 아닐까…. 그런데 이제는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 달라졌어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실수한다고 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잊어버린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번 작업이 별로면 그다음 작업을 더 잘하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해요.
T
최근에 관심이 있는, 작업에 녹여내고 싶은 생각이나 주제가 무엇인가요?
S
기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는 ‘여성주의’와 ‘인종차별’이에요. 기성세대의 것과는 다른 우리 세대의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걸 작품에 반영하면 되잖아요. 저는 그 부분에서 굉장히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방금 말씀드린 주제는 항상 베이스로 가져가고 있고요.
그 밖에 최근에 가장 관심 있는 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거예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제가 최근에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휴가를 다녀왔거든요.
T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웃음)
S
네. 다녀오니까 통장이 비어서…. 이제 다시 일하고 돈 벌어야 해요. 아무튼 프랑스 남부, 그중에 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멍똥(Menton)이라는 도시에 갔다 왔어요. 멍똥은 70년대에 시간이 멈춘 느낌이 들어요. 가게들도 오래되었고, 노인들이 많아요. 또 어딜 가든지 백인들밖에 없고요. 가끔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마주치긴 하는데, 정말 드물었어요. 근데 멍똥에서 기차로 세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마르세유에는 백인보다 유색인종이 더 많았어요. 그런 풍경을 보면서 인종 간의 빈부격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저 역시 파리가 아니라 스트라스부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스타 아닌 스타들(웃음)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는데, 이번 휴가에서 어떤 콘트라스트를 마주하면서 충격을 받은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너무 치우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동시에 어떻게 나를 지키면서 계속 작업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어요.
저 역시 파리가 아니라 스트라스부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스타 아닌 스타들(웃음)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는데, 이번 휴가에서 어떤 콘트라스트를 마주하면서 충격을 받은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너무 치우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동시에 어떻게 나를 지키면서 계속 작업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어요.
T
번아웃이 왔던 경험이 있나요?
S
번아웃은 지금 온 것 같은데(웃음)…. 그래서 휴가를 다녀왔어요. 가야만 했고요. 작년에는 일이 많지 않아서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공모전이나 지원금 신청했던 게 잘 되면서 갑자기 일이 많아졌어요. 체감상으로는 서너 배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올해 초부터 눈앞에 있는 걸 해치우는 식으로 정신없이 일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대로라면 번아웃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심하는 중이에요.
제가 졸업하고 나서 한 번 슬럼프가 심하게 왔던 적이 있거든요. 손목 터널 증후군에 걸렸을 때. 그땐 손목을 쓸 수 없어서 그림을 못 그리다 보니까 당연히 슬럼프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는 번아웃이 오기 쉬운 직업인 것 같아요. 한번 스타일이 잡히고 나면 평생 이 스타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되게 빨리 질려하고 나도 내 스타일에 질려버리고…. 어느 순간이 찾아오면 기존에 쓰던 언어로는 할 이야기가 없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작업에 대한 채널을 제때 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오래 생존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질리지 않고 내가 나를 소진하지 않기 위해서요. 사실 전 아직 그걸 잘 못 해요. 제때 쉬고 제때 일하는 것.
제가 졸업하고 나서 한 번 슬럼프가 심하게 왔던 적이 있거든요. 손목 터널 증후군에 걸렸을 때. 그땐 손목을 쓸 수 없어서 그림을 못 그리다 보니까 당연히 슬럼프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는 번아웃이 오기 쉬운 직업인 것 같아요. 한번 스타일이 잡히고 나면 평생 이 스타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되게 빨리 질려하고 나도 내 스타일에 질려버리고…. 어느 순간이 찾아오면 기존에 쓰던 언어로는 할 이야기가 없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작업에 대한 채널을 제때 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오래 생존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질리지 않고 내가 나를 소진하지 않기 위해서요. 사실 전 아직 그걸 잘 못 해요. 제때 쉬고 제때 일하는 것.
T
올해 예정된 일 중에 기대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S
다음 달에 알자스(Alsace)에 있는 소도시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일본 만화 수업을 해요. 그 도시의 도서관에서 먼저 제안해준 일이에요. 아이들이 워낙 나루토나 원피스 같은 만화를 좋아하니까 일본 만화 수업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서 수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그게 굉장히 기대돼요. 요즘 애들은 어떤 만화를 읽고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해요.
또 지원했던 판화 공모전에 당선이 되어서 지난달까지 큰 판화작업을 했어요. 이 작품을 9월에 파리에서 전시해요. 처음에는 전시 장소가 프랑스 문화부라고 했는데, 거긴 지금 공사 중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곳에서 전시할 텐데 좀 기다려달라, 파리 시내에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어디서 하든 괜찮은데(웃음)…. 아무튼 그 전시 공간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크고 화려한 곳에서 할 것 같은데 거기서 작품을 보면 기분도 색다를 것 같아요.
또 지원했던 판화 공모전에 당선이 되어서 지난달까지 큰 판화작업을 했어요. 이 작품을 9월에 파리에서 전시해요. 처음에는 전시 장소가 프랑스 문화부라고 했는데, 거긴 지금 공사 중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곳에서 전시할 텐데 좀 기다려달라, 파리 시내에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어디서 하든 괜찮은데(웃음)…. 아무튼 그 전시 공간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크고 화려한 곳에서 할 것 같은데 거기서 작품을 보면 기분도 색다를 것 같아요.
T
얼마 전에 그림책 «Papa Ballon»을 출간하셨는데, 책 소개를 부탁드려요.
S
«Papa Ballon»은 어린이 그림책이에요. 제가 원래 그림책 작업을 종종 하면서 출판사에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그전까지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어요(웃음). 근데 «Papa Ballon»은 출판사 쪽에서 ‘작업이 좋은데 같이 그림책을 만들어보자’라고 먼저 제안을 해줘서 시작하게 됐어요.
이 책의 시작은 고등학교 때 그린 그림 한 장이었어요. 아빠 모양(?)의 풍선을 손에 쥐고 엄마와 같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를 그린 적이 있어요. 그때 아빠는 «Papa Ballon»의 아빠처럼 얼굴만 둥실 떠 있는 게 아니라 몸통 전체가 하나의 풍선이었어요.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아빠의 운명이 어린아이 손에 달린 모습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그림책 제안을 받고 이 그림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그림과 당시 제가 구사하던 스타일을 고려하면서 작업했어요. ‘딸’과 ‘풍선이 된 아빠’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아빠가 풍선으로 변한 뒤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써나갔어요. 스토리는 이틀 만에 거의 다 완성했고, 글 쓰는 데는 일주일 정도 걸렸어요. 글을 쓴 다음 프랑스어로 말이 되게 다듬었고요. 말투와 시제를 바꾸고, 몇몇 대사를 고치는 작업을 인쇄 넘기기 직전까지 반복했어요.
이 책은 스토리보드가 한 번에 통과되어서 작업 진행이 수월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클라이언트를 상대한다는 느낌도 없었고요. 중간중간 체크하고 싶어서 출판사 쪽에 보여줬을 때도 계속 긍정적인 피드백이 와서 그냥 혼자 독립출판물 만들듯이 재미있게 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시작은 고등학교 때 그린 그림 한 장이었어요. 아빠 모양(?)의 풍선을 손에 쥐고 엄마와 같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를 그린 적이 있어요. 그때 아빠는 «Papa Ballon»의 아빠처럼 얼굴만 둥실 떠 있는 게 아니라 몸통 전체가 하나의 풍선이었어요.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아빠의 운명이 어린아이 손에 달린 모습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그림책 제안을 받고 이 그림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그림과 당시 제가 구사하던 스타일을 고려하면서 작업했어요. ‘딸’과 ‘풍선이 된 아빠’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아빠가 풍선으로 변한 뒤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써나갔어요. 스토리는 이틀 만에 거의 다 완성했고, 글 쓰는 데는 일주일 정도 걸렸어요. 글을 쓴 다음 프랑스어로 말이 되게 다듬었고요. 말투와 시제를 바꾸고, 몇몇 대사를 고치는 작업을 인쇄 넘기기 직전까지 반복했어요.
이 책은 스토리보드가 한 번에 통과되어서 작업 진행이 수월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클라이언트를 상대한다는 느낌도 없었고요. 중간중간 체크하고 싶어서 출판사 쪽에 보여줬을 때도 계속 긍정적인 피드백이 와서 그냥 혼자 독립출판물 만들듯이 재미있게 했던 것 같아요.
T
클라이언트 잡과 개인 작업을 할 때 어떤 태도로 임하시는지, 각각의 태도에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S
전 대부분의 작업에서 클라이언트 잡을 할 때도 개인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임해요. 안 그러면 흥미를 잃어버리고, 흥미를 잃어버리면 재미없는 걸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제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최대한 즉흥적으로 작업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T
그럼 제안이 들어온 일에 흥미가 없다거나 내키지 않을 때도 그 일을 소화하려고 하시나요? 혹은 거절할 때도 있나요?
S
아직 그렇게까지 내키지 않는 작업을 한 적은 없어요. 웬만하면 다 괜찮았던 것 같아요. 소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너무 재미없을 때는 “에이, 이거 하고 말자”가 아니라 그 주제를 벗어나서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돌파했던 것 같아요. 아직 일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거나 하진 않아서…. (웃음) 특이한 케이스가 없었던 것 같네요.
T
평소에도 일기를 쓰시나요? 일주일 동안 일기를 쓴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S
평소에는 전혀 안 써요. 이번에 제대로 쓰려다 보니까 처음에는 어색하긴 했지만 재미있더라고요. 평소에는 글을 길게 쓰지는 않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그냥 노트에 적어요. 이번에 일기 쓸 때도 평소의 메모 습관이 좀 들어간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떤 일기를 어떤 톤으로 쓰실지 궁금해요.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나 싶기도 하고, 너무 많이 안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어떠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