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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한
박새한은 1989년 부천에서 태어나 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살며 활동하고있는 한국인 일러스트레이터이다. 2017년에 라인고등미술학교(HEAR)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를 졸업했으며, 2021년 출판된 첫 그림책 “Papa Ballon”은 ADAGP 그림책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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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T
코로나 19 이후 새한님은 프랑스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프랑스의 코로나 현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S
프랑스는 작년 3월에 처음 락다운을 한 뒤 지금까지 락다운이 세 번 정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집 밖에도 아예 못 나가도록 규제가 되었는데, 락다운이 두 세 번 반복되면서 해이해진 것 같아요. 규칙 안 지키는 사람들도 많고요. 다행히 이제는 백신이 들어와서, 저와 제 주변 사람들도 다들 백신 접종을 하고 있어요. 요즘 분위기는 완전 여름 바캉스 같아요. 아무도 마스크 안 쓰고, 휴가나 여행도 가고, 파티도 하고. 아직 클럽이나 페스티벌 같은 곳은 집합 금지를 시행하고 있는데 그런 점 빼고는 거의 예전의 삶을 되찾았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아,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어요. 최근에 제가 다녔던 학교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어요. 프랑스는 6월이 졸업 시즌이라 졸업 심사를 다 이 때 하는데요. 졸업 심사위원으로 외부에서 초대된 아티스트 한 분이 델타 변이에 감염되었던 거예요. 그 사람이 심사 보고 나서 네다섯명에게 전염이 됐어요. 그래서 학교 문도 닫고, 예정된 졸업 심사도 모두 취소됐어요.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에 클러스터(Cluster)가 발생했다고 뉴스에 보도도 됐고요. ‘이게 무슨 일인가’하면서 뉴스를 봤던 기억이 있어요.
T
프랑스에서 미술 학교를 다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입학하게 되셨는지, 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하셨는지 궁금해요.
S
저는 HEAR(Haute école des arts du Rhin)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석사 졸업을 했어요. 한국에서 미술 대학에 다니면서 막연하게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검색도 해보고, 유학원에서 상담도 받으면서 찾은 학교가 HEAR이었어요. 프랑스가 워낙 만화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당시 선택지가 프랑스와 독일밖에 없기도 했어요. 다른 나라는 학비가 너무 비싸서 마땅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두 나라 중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HEAR이 마침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있는 스트라스부르라는 도시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선택했어요.
학교에 아뜰리에가 아주 많아요. 실크스크린 공방이라든지, 판화 공방이라든지. 테크니션이 항상 상주하고 있고, 학생들이 가서 작업 상담도 받으면서 같이 작업할 수 있는 구조예요. 테크니션의 실력이 좋고, 작업실끼리 협업도 잘 이루어지는 분위기라서 그런 측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T
HEAR에 입학한 게 언제였나요?
S
학교에 입학한 건 2013년이었고, 프랑스에는 2011년에 왔어요. 2년 동안 프랑스어 공부도 하고, 입학시험도 보면서 지냈어요.
T
제가 3년 전에 새한님을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에서 뵈었거든요. 그때 처럼 가끔 한국에도 들어오시는 건가요?
S
아, 정말요? 한국을 안 들어간 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마지막으로 갔던 게 2018년,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참가했던 때네요. 당시에 한 번도 언리미티드에디션에 참가한 적이 없어서 많이 궁금하기도 했었고요. 또 한국에 들어가면서 ‘비행기표 값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에(웃음) 참여하게 되었어요. 언리미티드에디션은 제가 참여했던 페스티벌 중에 가장 규모가 컸는데요. 행사를 보러 오는 사람들도 부스를 대충 훑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작업을 하나하나 펼쳐보고, 궁금한 점도 물어봐 주시더라고요. 정말 좋았어요. 또 참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언제 한국에 갈지가 불투명하네요. 내년쯤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한국에 자주 들어가지는 못해요. 비행기표 값도 그렇고, 최근에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도 생겨서요. 가능하다면 매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있죠.
T
새한님은 한국과 프랑스, 각각의 나라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S
‘나라’보다는 ‘도시’의 관점에서 생각해요. ‘한국’과 ‘프랑스’가 아니라 ‘서울`과 ‘스트라스부르’로요.
저는 한 번 거주지를 옮기면 그곳에서 비교적 오래 살았어요. 고등학교가 기숙학교라서 3년을 같은 곳에서 살았고요. 대학교도 천안에 있어서 천안에서만 3~4년을 살았어요. 스트라스부르에서 살게 된 지도 거의 9년이 다 되었고요. 또 지금은 인천에 집이 있지만, 나고 자란 곳은 부천이라서 저 자신을 부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게는 각 ‘나라’의 인상보다는 ‘도시’의 인상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프랑스는 도시마다 분위기와 인상이 다르기 때문에 프랑스라는 나라를 어느 하나로 특징지어서 얘기하긴 어렵긴 해요. 아무튼 프랑스에서 살다가 한국에 갔을 때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주변을 둘러봤을 때 한국인밖에 없다는 거예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대부분 검은색 머리를 하고, 모두 한국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요. 한국에서는 전철을 타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다 들리잖아요. 그런 상황도 신기해요. 지금은 프랑스어가 익숙해져서 큰 노력 없이도 프랑스어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래도 한국말처럼 잘 들리지는 않거든요.
주변 상황 말고, 저 자신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해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외국어를 몇 개씩 구사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언어를 쓸 때마다 다른 성격이 나온다’라는 말이요. 제 생각에 저는 한국어를 할 때보다 프랑스어 할 때 조금 더 외향적인 것 같아요.
T
일기에 적혀있던 ‘생에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걸 느낄수록 어느 쪽이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조금 더 쉬워진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삶의 방식에 대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나 전과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S
음…. 그때 느꼈던 느낌을 솔직하게 쓴 거라서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이 어떤 건데?’라고 물어본다면 정리해서 얘기하기는 힘들고요. 그냥 제 감정에 관해서 말해보자면, 사람마다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 얘기를 할까 저 얘기를 할까 망설이다 시간이 지나가고, 그러다 보니까 내향적인 사람이 된 게 아닐까…. 그런데 이제는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 달라졌어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실수한다고 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잊어버린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번 작업이 별로면 그다음 작업을 더 잘하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해요.
T
최근에 관심이 있는, 작업에 녹여내고 싶은 생각이나 주제가 무엇인가요?
S
기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는 ‘여성주의’와 ‘인종차별’이에요. 기성세대의 것과는 다른 우리 세대의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걸 작품에 반영하면 되잖아요. 저는 그 부분에서 굉장히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방금 말씀드린 주제는 항상 베이스로 가져가고 있고요.
Nihao konichiwa, 21 x 18 cm, 종이에 잉크와 마커, 2018
Nth room, 10.5 x 14.8 cm, 종이에 잉크와 마커, 2020
International women’s day, 10.5 x 14.8 cm, 혼합매체, 2020
그 밖에 최근에 가장 관심 있는 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거예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제가 최근에 처음이자 마지막 여름휴가를 다녀왔거든요.
T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웃음)
S
네. 다녀오니까 통장이 비어서…. 이제 다시 일하고 돈 벌어야 해요. 아무튼 프랑스 남부, 그중에 이탈리아 국경에 있는 멍똥(Menton)이라는 도시에 갔다 왔어요. 멍똥은 70년대에 시간이 멈춘 느낌이 들어요. 가게들도 오래되었고, 노인들이 많아요. 또 어딜 가든지 백인들밖에 없고요. 가끔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마주치긴 하는데, 정말 드물었어요. 근데 멍똥에서 기차로 세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마르세유에는 백인보다 유색인종이 더 많았어요. 그런 풍경을 보면서 인종 간의 빈부격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저 역시 파리가 아니라 스트라스부르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스타 아닌 스타들(웃음)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는데, 이번 휴가에서 어떤 콘트라스트를 마주하면서 충격을 받은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너무 치우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동시에 어떻게 나를 지키면서 계속 작업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어요.
T
번아웃이 왔던 경험이 있나요?
S
번아웃은 지금 온 것 같은데(웃음)…. 그래서 휴가를 다녀왔어요. 가야만 했고요. 작년에는 일이 많지 않아서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공모전이나 지원금 신청했던 게 잘 되면서 갑자기 일이 많아졌어요. 체감상으로는 서너 배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올해 초부터 눈앞에 있는 걸 해치우는 식으로 정신없이 일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대로라면 번아웃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심하는 중이에요.
제가 졸업하고 나서 한 번 슬럼프가 심하게 왔던 적이 있거든요. 손목 터널 증후군에 걸렸을 때. 그땐 손목을 쓸 수 없어서 그림을 못 그리다 보니까 당연히 슬럼프가 올 수밖에 없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는 번아웃이 오기 쉬운 직업인 것 같아요. 한번 스타일이 잡히고 나면 평생 이 스타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되게 빨리 질려하고 나도 내 스타일에 질려버리고…. 어느 순간이 찾아오면 기존에 쓰던 언어로는 할 이야기가 없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작업에 대한 채널을 제때 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오래 생존할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질리지 않고 내가 나를 소진하지 않기 위해서요. 사실 전 아직 그걸 잘 못 해요. 제때 쉬고 제때 일하는 것.
T
올해 예정된 일 중에 기대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S
다음 달에 알자스(Alsace)에 있는 소도시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일본 만화 수업을 해요. 그 도시의 도서관에서 먼저 제안해준 일이에요. 아이들이 워낙 나루토나 원피스 같은 만화를 좋아하니까 일본 만화 수업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서 수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그게 굉장히 기대돼요. 요즘 애들은 어떤 만화를 읽고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해요.
또 지원했던 판화 공모전에 당선이 되어서 지난달까지 큰 판화작업을 했어요.
이 작품을 9월에 파리에서 전시해요. 처음에는 전시 장소가 프랑스 문화부라고 했는데, 거긴 지금 공사 중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곳에서 전시할 텐데 좀 기다려달라, 파리 시내에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어디서 하든 괜찮은데(웃음)…. 아무튼 그 전시 공간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크고 화려한 곳에서 할 것 같은데 거기서 작품을 보면 기분도 색다를 것 같아요.
T
얼마 전에 그림책 «Papa Ballon»을 출간하셨는데, 책 소개를 부탁드려요.
S
«Papa Ballon»은 어린이 그림책이에요. 제가 원래 그림책 작업을 종종 하면서 출판사에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그전까지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어요(웃음). 근데 «Papa Ballon»은 출판사 쪽에서 ‘작업이 좋은데 같이 그림책을 만들어보자’라고 먼저 제안을 해줘서 시작하게 됐어요.
이 책의 시작은 고등학교 때 그린 그림 한 장이었어요. 아빠 모양(?)의 풍선을 손에 쥐고 엄마와 같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를 그린 적이 있어요. 그때 아빠는 «Papa Ballon»의 아빠처럼 얼굴만 둥실 떠 있는 게 아니라 몸통 전체가 하나의 풍선이었어요.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아빠의 운명이 어린아이 손에 달린 모습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출판사에서 그림책 제안을 받고 이 그림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그림과 당시 제가 구사하던 스타일을 고려하면서 작업했어요. ‘딸’과 ‘풍선이 된 아빠’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아빠가 풍선으로 변한 뒤 그들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써나갔어요.
스토리는 이틀 만에 거의 다 완성했고, 글 쓰는 데는 일주일 정도 걸렸어요. 글을 쓴 다음 프랑스어로 말이 되게 다듬었고요. 말투와 시제를 바꾸고, 몇몇 대사를 고치는 작업을 인쇄 넘기기 직전까지 반복했어요.
이 책은 스토리보드가 한 번에 통과되어서 작업 진행이 수월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클라이언트를 상대한다는 느낌도 없었고요. 중간중간 체크하고 싶어서 출판사 쪽에 보여줬을 때도 계속 긍정적인 피드백이 와서 그냥 혼자 독립출판물 만들듯이 재미있게 했던 것 같아요.
T
클라이언트 잡과 개인 작업을 할 때 어떤 태도로 임하시는지, 각각의 태도에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S
전 대부분의 작업에서 클라이언트 잡을 할 때도 개인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임해요. 안 그러면 흥미를 잃어버리고, 흥미를 잃어버리면 재미없는 걸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제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거기에서 최대한 즉흥적으로 작업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T
그럼 제안이 들어온 일에 흥미가 없다거나 내키지 않을 때도 그 일을 소화하려고 하시나요? 혹은 거절할 때도 있나요?
S
아직 그렇게까지 내키지 않는 작업을 한 적은 없어요. 웬만하면 다 괜찮았던 것 같아요. 소화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너무 재미없을 때는 “에이, 이거 하고 말자”가 아니라 그 주제를 벗어나서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돌파했던 것 같아요. 아직 일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거나 하진 않아서…. (웃음) 특이한 케이스가 없었던 것 같네요.
T
평소에도 일기를 쓰시나요? 일주일 동안 일기를 쓴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S
평소에는 전혀 안 써요. 이번에 제대로 쓰려다 보니까 처음에는 어색하긴 했지만 재미있더라고요. 평소에는 글을 길게 쓰지는 않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그냥 노트에 적어요. 이번에 일기 쓸 때도 평소의 메모 습관이 좀 들어간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떤 일기를 어떤 톤으로 쓰실지 궁금해요.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나 싶기도 하고, 너무 많이 안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어떠셨어요?